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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의 수업 [펌]--[태국]

PAPAM 2006. 7. 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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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태국지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불기 3세기 말경으로 당시에 타이만을 중심으로 하여 말레이반도와 인도차이나반도 그리고 자바와 수마트라 등지에 왕래하던 브라만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이때부터 불교는 태국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태국을 불교국가로 발전시켜 나갔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태국인의 93.47%가 불교신자이며전국에 3만 5천 여 개의 사찰이 있다.

대부분의 태국인에게 있어 불타의 가르침은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며 태국인의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과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의 태국인에게 있어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이라는 느낌을 준다.

태국의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 이상 절에 들어가 승려수업을 한다. 승려수업이란 일정기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불법을 익히고 불타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불교적 전통이다.

특히 태국인들이 3개월간 행하는 단기 승려수업은 불교의 경전에도 나타나 있지 않고 석가세존의 생존 당시에도 없었던 태국 고유의 풍습으로 보인다. 이글에서는태국의 승려수업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승려수업은 태국 불교문화 중의 중요한 일부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태국인의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태국의 승려수업을 이해하는 것은 태국사람과 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승려수업의 유래

승려수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지만 수코타이 시대 때 시작되어 점차 형태를 갖추어 아유타야 시대 중기에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거에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3년간 승려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3개월로 행해졌고 사정에 따라 더 짧게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결혼하기 전에는 누구나 한번 승려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부엇껀비얏’이라고 한다.

또 승려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을 ‘콘딥’이라 해서 ‘익지 않은 사람’즉 아직 선악이나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승려수업은 왕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록에 의하면 태국 최초의 통일 왕국인 쑤코타이 왕국 시대에 리타이 왕(1347~1374)이 왕의 신분으로서는 최초로 승려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태국의 ‘탐마라차’라 불리는 온정주의적 법왕(法王)과도 관련이 있다.태국의 고대법전인 프라탐마삿에 의하면 탐마라차는 시법(十法)을 준수할 때만이 국왕으로서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시법은 국왕이 이상적으로 준수해야할 10가지의 통치덕목을 언급한 것으로 보시(布施), 지계(持戒), 희생, 공정, 온화, 노력, 불노(不怒), 불해(不害), 인내, 불역(不逆)등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법에 따라 정의롭게 통치하는 왕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여기고 그를 ‘탐마라차’라고 불렀다.

따라서 탐마라차는 법을 준수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갖게 되며 만약, 법을 거슬러서 불법(不法)을 저지르는 왕이 있을 경우에는 그 왕의 통치권을 거부하는 일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왕실의 승려수업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태국의 현재 국왕인 라마9세 푸미폰국왕도 1956년 10월 22일부터 왕실사원에서 15일간 단기 승려수업을 하면서 탁발의식을 행하고 엄격한 수도생활을 함으로서 불타의 가르침을 행하는 탐마라차의 모습을 보여 준 바 있다.

승려수업의 종류

승려수업은 태국인들에게 있어서 부모에게 보은이며 효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이유는 태국인 들의 믿음 속에는 자식이 승려수업을 하게 되면 그 공덕이 부모에게로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국말에 ‘헨 차이 파르엉’ 이라는 말이 있는데 황색 옷자락 끝을 잡고 극락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황색 옷자락은 승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자식이 승려 수업을 하게 되면 그 공덕으로 부모가 극락에 간다는 의미이다. 태국의 승려수업에는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다.

사미승으로 승려수업 : 만 20세가 되지 않은 남자가 출가하여 승려수업을 할 경우 ‘반파차’ 또는 ‘부엇뻰넨’이라고 한다. 출가 기간 동안 10계를 지키며 수도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공덕은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스님으로 승려수업 : 만 20세 이상의 남자가 출가하여 승려수업을 하는 경우 ‘웁빠솜봇’ 또는‘부엇뻰프라’라고 한다. 227계를 지키며 수도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공덕은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결혼 전에 하는 승려수업도 여기에 해당한다.

명복을 비는 승려수업 : 부모나 일가친척 중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부엇나파이’라고 한다. 이는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장례식이 끝나고일정기간 출가하여 하는 승려수업으로 이때의 공덕은 고인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보은으로 하는 승려수업 : 태국인은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을 때 그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면 얼마간 승려수업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태국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약속한 바에 따라 일정 기간 승려수업을 하는데 이를 ‘부엇깨본’이라고 한다.

출가의식

스님으로서 승려수업을 하기 위해 출가하는 경우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해지게 된다. 출가하여
승려수업을 한다는 것은 불교의 계율과 규칙에 따라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① 폐병 등과 같은 심한 병이나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아야 하고 ② 출가자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고 ③ 남자이어야 한다. ④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어야 하고 ⑤ 빚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⑥ 공무원일 경우 해당 부처에서 허락이 있어야 하며 ⑦ 집에서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한 출가자는 ⑧ 만 20세가 되어야 한다. ⑨ 시주그릇과 승복이 있어야 한다.

출가의식과 환속의식은 가문의 큰 경사에 속한다. 출가의식은 집에서 성대하게 행하는데 부유한 가정에서는 2-3일간 큰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출가의식에 비용을 부담하거나 직접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큰 공덕을 쌓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태국에서 출가자가 있는 경우 집안, 또는 마을의 잔치가 되기도 한다.

1. 출가전의 절차


(1) 출가심사 : 20세가 된 성인남자가 출가할 경우에 출가예정자의 부모는 출가예정자를 대동하고 가까운 절을 찾아 출가의사를 밝힌다. 절의 주지는 출가예정자와 그의 부모를 접견하고 출가예정자의 출가자격을 심사한다.

주지가 출가예정자의 적격함을 인정하고 출가를 허락하게 되면 출가예정자는 출가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이렇게 출가를 위해 사전에 절을 방문하는 경우 보통은 꽃과 향 그리고 초를 가지고 가서 시주한다.

또한 출가할 사람은 부모가 준비해 준 향·초·꽃을 쟁반에 담아들고 집안 어른들과 친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는 사람은 축하해주고 형편에 따라 축의금을 주기도 한다. 태국에서 승려수업을 위해 출가하는 경우에 직장에서 유급휴가를 허락하는 것이 당연지사로 되어있다.

(2) 출가의식 연습 : 출가의사를 밝히고 출가심사를 거쳐 출가허락을 얻게 되면 출가예정자는 ‘낙’또는 ‘짜오낙’이라 불리게 된다. ‘낙’은 출가의식과 승려로써 지켜야 할 예절을 익혀야한다. 또 출가의식에서 사용되는 팔리어 문구를 익히고 승려로서 예불드릴 때 사용하는 팔리어 경전 등을 암송하여야 한다.

먼저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하는 법과 승려로 출가를 청하는 문구와 수계를 청하는 문구 그리고 승려 될 자격을 묻는 말에 대한 답을 하는 문구들을 충분히 연습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구들은 모두가 팔리어로 되어 있어 따로 연습해 두지 않으면 출가의식을 제대로 거행할 수 없다.

(3) 승려의 생활용품 준비 : 출가자의 부모나 보호자 또는 친지들은 출가예정자가 허락을 득하면서부터 출가자가 출가하여 사용하는 여러가지 승려용품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러한 승려의 생활용품을 ‘8 버리칸’이라고 하는데 ①응량기 (시주그릇) ②승복 하의 ③승복 겉옷 ④승복 상의 ⑤허리띠 ⑥정수천 ⑦바늘 ⑧면도칼 등이 그 것이다.

(4) 출가전야 : 출가 전날을 ‘완쑥딥’이라 한다. 이날은 다음날 스님을 대접할 음식과 필요한 도구를 마련하고 출가의식을 거행할 장소를 청소하고 필요한 치장을 한다. 또, 스님에게 시주할 음식도 따로 만든다.

(5) 출가자 위로의식 : 출가자 위로의식은 출가자의 일가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속세를 떠나 불가로 들어가는 출가자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한 것으로 출가 전날 출가자의 집에서 하게 된다.

출가예정자가 삭발을 하고 흰색 천으로 만든 예복을 단정하게 입은 후에 식장에 들어와 앉게 되면 참석자들이 출가 예정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준비해온 물품을 놓는다. 여기에는 계란을 얹어 놓은 밥과 승복, 응량기 그리고 향과 초등의 예물이 포함된다.

준비가 끝나면 의식을 주관하는 주례가 들어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을 하게 된다. 의식을 마친 후에는 참가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게 되며 여러 가지 부속 행사가 잇따르게 되는데 그 내용은 출가자의 경제사정과 여건에 따라 다르다.

2. 출가행렬

출가의식에 앞서 출가자를 코끼리나 말, 차 또는 배에 태우고 행렬을 지어 사원으로 가게 된다. 때로는 사람에 의해 목말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때 출가자의 부모는 아버지가 응량기를 어머니가 승복을 안고 가족친지들은 출가자가 승려로서 생활할 때 사용할 여러 가지 물품들을 들고 행렬에 참가한다.

이때는 태국전통의 음악이 연주되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출가자의 출가를 축하하고 때로는 춤을 추면서 절로 간다. 행렬이 절에 도착하면 불당을 세바퀴 도는데 ‘탁씬나왓’이라 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돈다. 세 번 도는 의미는 첫 번째 바퀴는 부처님, 두 번째 바퀴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세 번째 바퀴는 스님의 은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불당을 세 바퀴 돈 후에 불당 안으로 입당하게 되는데 이때 출가자의 아버지가 왼쪽에서 어머니는 오른쪽에서 출가자를 부축하고 들어간다. 불당에 들어선 출가자는 꽃과 향과 초를 바치고 계율을 청하면서 수계의식이 시작된다.

3. 수계의식

수계의식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출가자가 불당 안으로 들어와 세 번 절한 후에 부모로부터 승복을 받고 수계의식이 시작된다. 모든 의식에 있어 수계자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그리고 모든 염불은 팔리어로 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출가자의 자격을 묻는 13개항의 질문과 출가자의 이름 그리고 사표가 될 스승의 이름을 묻는 질문을 거쳐 모두 227계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하여 수계식 끝머리에서 출가자는 승복으로 갈아입고 승려가 되는데 이때부터 출가자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승려생활을 하게 되며 227계를 모두 지켜야 한다.

수계의식이 끝나면 스님들께 공양하고 참석자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된다. 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이렇게 출가의식에 참가하는 것도 공덕을 쌓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누가 출가하든 간에 출가의식은 그 마을의 잔치나 축제처럼 치러진다.

승려생활


일단 승려가 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생활이 계율에 따라 행해져야한다. 태국의 상좌부불교는 승려의 경제활동이나 생산활동을 전면 금지하므로 승려의 식생활은 모두 재가신도들이 바치는 음식물 공양으로 이루어진다.

승원 또는 사찰에는 부엌도 없고 채소를 가꾸는 텃밭도 없다. 승려는 돈이나 금품을 휴대할 수 없으며, 음식은 재가신도들이 보시하는 대로 공양하기 때문에 육식, 채식을 가리지 않지만 하루에 아참과 점심 두 끼만을 먹으며 정오 이후에는 씹어서 먹는 음식물을 일체 먹지 못한다.

승려의 하루는 탁발로 시작된다. 아침 여섯시 전에 일어나게 되면 모두가 침소에서 나와 목욕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모이게 된다. 승려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마을에 탁발을 나가게 되는데 마을 전체를 구역별로 분류하여 거기에 따른 조를 편성하여 나누어 가게 된다. 따라서 어느 한집도 승려가 다녀가지 않는 집이 없다.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믿음은 독실하여 스님에게 공양하기 전에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정된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절대로 자신이 밥을 퍼서 먹을 수 없다. 절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밥과 반찬을 떠서 바쳐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이를 ‘빡켄’이라 한다. 마을 전체에서 탁발해온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기 때문에 승려의 식사는 매우 다채롭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오전 9시에 아침 예불을 올리게 되면 점심식사 시간까지는 자유롭다. 이때에 승려들은 원내를 산책하기도 하고 불경을 공부하기도 한다. 태국의 승려들에게는 육식과 흡연이 허용되는 반면에 정오 이후의 식사는 금지되어 있다.

혹 외출을 하더라도 승려는 반드시 12시 이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더라도 12시 15분을 넘어서 식사를 하는 것은 곧 계율을 어기는 것이 된다.저녁 4시에 오후 예불을 올리고 나면 승려의 하루 일과는 끝나는 셈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승려가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주로 불경을 공부하거나 청소를 하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한다. 처음 승려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일정기간 다른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승려수업의 사회 문화적 의미

부모로부터 신앙을 물려받는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불교가 태국인들에게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태국인들의 정신적·물질적 불교문화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태국에서 사원은 태국인 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시로 찾는 곳으로 정신적인 안식처로 또 하나의 집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의 승려수업은 태국인에게 있어서 온전한 불교신자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승려수업을 통하여 태국인은 불타의 가르침을 익히고 수도생활을 통한 규율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말씨와 태도도 한층 성숙되어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익히게 되며 책임감도 갖게 된다.

또한 불법을 기준으로 한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기준도 형성하게 되며 절제와 검소의 미덕도 아울러 갖게 된다. 또한 불교의 여러 가지 의식과 예불에 대한 지식을 갖춤으로써 불교도로 살아가는데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태국에서 출가자가 일정기간 동안 승려수업을 한 후 환속하면 도덕적으로 완숙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되며 청혼을 할 때 남성의 승려수업 경력은 필수요건이다. 여자 측의 부모는 신랑감의 가문이나 재산, 인물, 지위 등을 보는 것 외에 승려수업 실행 여부를 중요시 여기는데 이는 외적조건 외에도 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태국인들의 승려에 대한 믿음은 대단하다. 태국에서는 불타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스님에 대한 법력을 믿는다. 태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라 스님 상이다. 태국인들에게는 어느 스님은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으며 어느 스님은 재물을 가져다주는 영험이 있고 어떤 스님은 화를 입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다는 등의 믿음이 있다.

태국인들은 절교하는 것을 ‘시주그릇을 엎는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승려에게 시주하며 1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에도 시주로 한해를 시작한다. 생일이나 집들이 결혼식에도 맨 먼저 시주를 하며 큰 돈을 벌면 일부를 절에 바치기도 한다. 사업이 안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사원을 찾아 성수를 받고 이를 씻어낸다.

태국인은 남성의 경우 태어날 때는 집에서 태어나지만 일정기간 승려수업을 통해 온전한 불교신자로 다시 태어나며 죽어서는 모두가 절로 간다. 태국의 절 안에는 화장터가 있어 업을 다한 사람의 육신을 화장하고 영혼을 받아들여 쉬게 한다.

고인의 유골은 절에 안치해 놓고 있다가 중요한 기일에는 유족들이 향과 초를 가지고 절에 가서 명복을 빈다.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 태국에서 사원과 승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 ***

태국 사회에서 승려는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사람은 승려밖에 없다. 승려는 국왕앞에서도 절하지 않는다.

승려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대상은 부처님뿐이다. 이러한 승려와 승려가 거처하는 사원은 태국 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교육기관 : 종교에서 경전은 대개 번역하지를 않는다. 일반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되면 가르침의 참뜻이 얼마간은 변하거나 소실되기 때문이다. 한자로 번역된 경전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태국의 불교는 아직까지 팔리(Pali)를 쓰고 있다.

태국어에는 우리말의 한자어 수만큼이나 팔리어와 싼스크릿트어가 섞여 있다. 따라서 글을 잘 아는 사람은 승려였다. 태국에서 승려는 훈장이고 승려가 있는 절은 서당과 같은 곳이었다. 태국어에서 학교라는 의미를 지닌 "롱리얀"이란 말은 근대에 들어와 서구식 학교가 설립되면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옛날에는 학교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다. 절이 곧 학교이고 승려가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이름을 대개는 한자어로 짓듯이 태국사람들도 이름을 대개는 팔리어나 싼스크릿트어로 짓는다. 따라서 글을 모르는 주민들이 작명을 청해오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승려의 일이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절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

주로 승려들이 일반 학문을 하지 않고 정해 놓은 과정에 따라 불교를 공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험에 합격할 경우에 나름대로 속세에서 배우는 일반 학문의 학위에 버금가는 증서를 받고 그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2. 의료기관 : 태국에서 사원은 곧 병원이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병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 글자를 아는 승려들이 주로 민간요법에 관한 서적을 읽고 의학 지식을 습득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위생과 보건을 돌보기도 했다.

따라서 누가 아프면 먼저 절에 와서 승려를 찾았고 승려에게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태국의 승려들은 민간요법에 의한 의학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3. 사회복지기관 : 불타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승려와 사원은 그 자체가 사회복지기관이기도 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절에 기거하면서 승려의 심부름을 하거나 절의 잔일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태국어로 "데카와트" 또는 "아람버이"라 부르는데 오늘날에도 태국 전역의 사원에 적지않은 아이들이 기거하고 있다. 또 사원은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오늘날까지도 태국을 여행하면서 절에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밖에도 태국 사회에서 승려와 사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 국가인 까닭에 불교명절을 중심으로 한 태국의 축제나 큰 행사는 대개가 절에서 열려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화합과 단결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문제나 주민들간의 불화가 있을 때에도 주민들이 찾아와 의논하고 이를 중재하여 처리해 주는 곳도 승려가 있는 사원이다. 이처럼 사원은 태국인들에게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사원은 태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않될 정신적 구심점이며 마음의 안식처이다. 무슨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사원이다. 또 태국인들은 죽으면 승려를 모셔와 염불을 하고 장례를 치른 뒤에는 절에서 화장을 한다. 그러한 까닭에 사원은 태국인의 생의 종착지이며 승려는 삶의 최후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승려수업

승려수업이란 일정기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불법을 익히고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태국의 불교적 전통이다. 태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결혼하기 전에는 누구나 한 번 승려수업을 해야만 하는데 이를 "부엇껀비얏"이라고 한다.

또 승려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을 "콘팁"이라 해서 '익지 않은 사람' 즉, 아직 선악이나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성인 남자라 해서 누구나가 승려수업을 받는 것은 아니며 한쎈씨병, 나병, 간질병, 부채가 있는지, 자유인인지 등등 8가지를 심사해서 통과를 해야만 한다.

또한 태국의 승려들은 227가지의 계율을 지키며 생활하는데 이것을 "파라지카"라 하며 그 중 '살생의 죄', '여자를 범하는 죄', '훔치는 죄', '거짓말의 죄' 등 이 4가지("파티목카"라 칭함)를 범하면 교단에서 추방을 당하고 승적을 박탈 당한다. 태국에는 비구니들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옛날에는 332가지의 계율을 지켰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 어려워 자동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일단 승려가 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생활이 계율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아침 6시 전에 일어나게 되면 모두가 침소에서 나와 목욕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모이게 된다. 승려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마을에 탁발을 나가게 되는데 마을 전체를 구역별로 분류하여 거기에 따른 조를 편성하여 나누어 가게 된다. 따라서 어느 한 집도 승려가 다녀가지 않는 집이 없다.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믿음은 독실하여 스님에게 공양하기 전에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정된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절대로 자신의 밥을 퍼서 먹을 수 없다. 절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밥과 반찬을 떠서 바쳐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이를 "빡껜"이라 한다. 이는 승려는 남이 주는 밥만을 먹어야 한다는 불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불교와 태국인

부모로 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불교가 태국인들에게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태국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불교문화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태국에는 현재 2만 9천 여개의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은 태국인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시로 찾는 곳으로 정신적인 안식처로 또 하나의 집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인들은 절교하는 것을 "시주그릇을 엎는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승려에게 시주하며 1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에도 시주로 한 해를 시작한다. 태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라 스님상이다.

태국인들에게는 어느 스님은 질병을 걸리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으며 어느 스님은 재물을 가져다주는 영험이 있고 어떤 스님은 화를 입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다는 등의 믿음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총에 맞았는데 총알이 옷만을 뚫었을 뿐 살갗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그것이 다 그사람 목에 걸고 있는 스님의 영험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스님들은 사고 팔기도 하는데 스님상 중에 어느 것이 영험이 좋다고 알려지면 그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일부 절에서는 사진을 곁들여 신문에 판매 광고를 내기도 한다.

태국인들은 태어날 때는 집에서 태어나지만 죽어서는 모두가 절로 간다. 태국의 절 안에는 화장터가 있어 업을 다한 사람의 육신을 화장하고 영혼을 받아들여 쉬게 한다.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국의 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않된다.

[출처 : 외국어대학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국제지역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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