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發 ‘외환 쇼크’ 아시아가 ‘깜짝’

아시아 각국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20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국 금융당국이 바트화의 급격한 절상(환율하락)을 통제하기 위해 강도높은 외환규제책을 발표했다 하루 만에 번복하는 소동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날 16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15% 가까이 폭락했던 태국 SET 지수가 이날 오전 중 9% 이상 반등했다. 한국(1.0%), 일본(1.4%) 등의 주가도 강세를 보이며 충격에서 벗어났다. 이번 태국 금융당국의 정책 혼선은 아시아 각국에 1997년 금융위기의 악몽을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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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혼선, 신인도 급락=태국 정부는 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진 바트화 강세의 원인 중 하나로 단기 차익을 노린 국제 투기자금을 지목, 지난 18일 외국인 투자가가 자본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가져온 외화의 30%는 이자 없이 중앙은행에 예치토록 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증시가 급락하자 태국정부는 19일 밤 부랴부랴 중앙은행, 증권시장 관계자들을 불러 긴급회동을 갖고 증권 부문은 규제하지 않고 채권 등 다른 부문만 외환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태국 정부의 ‘갈지(之)자 행보’는 국제금융시장의 곱지 않은 시선을 불러와 향후 태국의 국가 신인도에 부담을 안겨 줄 것으로 보인다. HSBC의 외환투자 전략가인 리처드 엣셍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1997년 외환위기의 진앙이었던 태국이 당시의 교훈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스리얀 피터스 JP모건 리서치팀장도 “이번 조치는 큰 망치로 개미를 때려 잡는 셈”이라며 “바트 절상 압력을 줄일 수 있겠지만 증시에 너무나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태국 왜 흔들리나=태국은 대외의존도가 무척 높은 나라다. 중계 무역을 위주로 하는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아시아 최고 수준인 120%대에 달한다. 수출과 관광수입이 나라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셈이다.

이런 태국경제에 바트화 가치상승(환율 하락)은 수출품의 가격을 높이고 관광객 감소를 불러오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바트화는 올 들어 달러에 대해 12.7% 급등했다. 최근 환율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한국(7.7%)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아시아 주요 15개 통화 중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태국의 국책연구원은 최근 올 성장률 전망치를 4%대에서 5%대로 높여 잡고 있으나 외부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태국의 올 하반기 성장률은 상반기의 5.5%보다 크게 떨어진 3.5%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내년에는 세계경제 성장 둔화와 바트화 강세가 겹쳐 태국 경제는 수출이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1997년과는 다르다=전문가들은 지금의 아시아 경제는 1997년 당시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며 과도한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997년은 아시아 통화 가치가 떨어졌던 데 따른 것이었지만 이번 태국정부의 조치는 바트화 가치가 올라서 나왔다”며 “태국 밖으로 확산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각국의 막대한 외환보유액 또한 위기의 확산을 막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고 있다. 중국은 세계 1위, 일본은 2위, 한국은 다섯번째로 외환을 많이 가진 나라다.

외국 전문가들도 위기 전염 가능성보다는 지역내 경제대국인 중국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등 10년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칼럼리스트인 필립 보링은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장기투자자본 유치를 위해 중국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이 자본유치와 수출 촉진을 위해 위안화를 억누르면서 국제자본이 중국을 더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비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지나치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해 결과적으로 힘 약한 이웃 국가들이 단기국제금융자본에 노출돼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